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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미 호박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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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미 호박요리
  • 전민일보
  • 승인 2017.08.23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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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탁에 호박잎과 된장찌개가 올라왔다. 효자동 로컬푸드 매장에서 사온 호박잎이다. 살짝 데친 호박잎에 현미밥과 된장을 조금 넣으면 입맛이 난다.

오래전 학생교육원 C장학사는 산중 공터에다 구덩이를 판뒤 닭똥을 부어넣고 호박을 심었다.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도 호박은 잘 자라서, 주말에 직원들이 하산할 때 호박잎을 따갔다. 나도 연한 잎을 골라 땄다. 호박잎을 전자밥통에 넣고 살짝 데쳐서 양념간장을 만들어 밥을 싸먹었다. 입맛이 살아나고 섬유질이 많아 소화가 잘 되었다.

내 어릴적 가을이면 어머니는 채소밭에서 여린 호박잎을 따다가 호박 대끝에서부터 실 같은 껍질을 벗기고 밥솥에 넣어 숨을 죽여 밥상에 올려놓았다. 어른들은 좋아했지만, 우리 형제들은 호박잎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별맛도 없고 혀에 닿으면 쓰릴 것 같아 손이 가지 않았다.

비 오는 날 애호박 한 덩이를 따다가 부침개를 부쳐 먹으면 간식거리로 그만이다. 애호박을 잘게 썰고 새우젓을 조금 넣어 새우장국을 끓이면 속풀이에 그만이다.

서리가 내리기 전 호박잎이 거칠어져 밥을 싸먹기 어려워지면 호박대를 자른다. 호박순과 탁구공만 한 호박부터 주먹만 한 호박을 딴다. 호박잎은 까칠까칠하므로 잔가시들을 살짝 벗기고 이것을 조물조물 씻어 연하게 만든다. 이때 호박잎 물이 우러나도록 비벼서 풋내를 제거해야 한다. 들깨를 한소끔 끓인 뒤 된장을 풀어 다시 끓여내면 호박대국이 된다. 육수는 멸치와 다시마로 맛을 내는 데 쌀뜨물을 쓰면 좋다. 싱거우면 집 간장을 약간 넣어 간을 맞춘다. 매운 고추 몇 개를 잘게 설어 넣으면 얼큰해진다. 우리 부부는 호박대국만 있으면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다. 호박 대가 많으면 연하게 만들어 비닐봉지에 넣고 냉동보관을 하면 한 겨울에도 호박대국을 먹을 수 있다.

퇴근하고 호박대를 구할 곳이 없어 재래시장에 나갔다. 비가 오다 말다 종일 흐렸다. 그래선지 시장에 호박대가 나오지 않아 헛걸음했다. 이심전심이었을까, 아내가 버스 정류소 옆 좌판에서 호박대를 사왔다. 가을 아욱국은 마누라를 쫓아내고 먹는다는 옛말이 있는데, 호박대국도 이에 버금 하는 성싶다.

오늘 아내가 끓여온 호박대국에 밥 한 공기를 비웠다. 다른 반찬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아내는 내 식성이 좋다며 반찬 타박을 하지 않아 고맙다고 하였다.

나는 음식 투정하는 사람을 경멸한다. 우리 집에서는 반찬 투정을 용납하지 않는다. 아들도 나한테 그것 하나는 잘 배웠을 것이다.

호박대국은 좀 싱겁다 할 정도로 끓여서 고추장을 적당하게 풀어 간을 맞추면 좋다. 된장이 들어가므로 짜게 될 수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음식은 싱겁게 먹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미각이 떨어지면서 자꾸 간을 강하게 하기 때문이다. 고혈압 예방을 위해서라도 싱겁게 먹어야 한다.

나는 호박 예찬론자가 다 되었다. 호박을 썰어 말린 호박나물도 먹고 싶다. 할머니는 익은 호박을 따다가 잘게 썰어 호박고지를 만들었다. 말랑말랑한 호박고지를 넣고 들깨를 갈아 탕국을 만들어 제사상에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 탕맛은 심심하여 아이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이런 음식의 담백한 맛이 좋아지고 그리워진다. 호박고지를 넣은 호박떡은 달고 맛이 있다.

‘하찮은 호박 나물이 속상하게 한다’는 말이 있다. 남의 밥상에 올려놓은 호박 나물이 내 밥상 위엔 없어 차별대우를 받는 것 같아 속상하다는 것이다.

하찮은 호박 나물이 아니고 귀한 호박 나물 때문에 속이 상한다고 고쳐야하겠다. 차별대우 중에서 음식 차별은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이다. 남의 눈에 잘 띄지 않으나 스스로 내실을 기하며 고루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호박만한 식품이 또 어디 있을까? 돌고도는 둥근 세상, 호박처럼 둥글둥글 살라고 가르쳐주는 듯싶다.

김현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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