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5-01 09:49 (수)
심판을 넘어 변화를 이끄는, 알록달록한 파랑을
상태바
심판을 넘어 변화를 이끄는, 알록달록한 파랑을
  • 전민일보
  • 승인 2024.04.18 09: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4월 10일(수) 제22대 국회의원선거(이하 총선)가 있었다. 결과는 모두가 아는 것처럼, 야권의 압승이었다. 더불어민주당·민주연합 및 조국혁신당 등이 192석을 차지했고, 여당인 국민의힘과 위성정당 국민의미래가 108석을 차지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정권 심판’이라는 키워드가 그 어느 정권보다 강하게 총선 정국을 주도한 셈이다.

전북특별자치도의 총선 결과 또한 마찬가지다. 도민은 투표를 통해 지역에 할당된 총 10개의 의석 전체를 파랗게 물들여 주었다. 역시나 결과만 놓고 보면, 도민의 선택은 하나로 분명했다. 그런데 문득 떠오르는 말이 있다. 공자는 ‘논어’ 위공령편 27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많은 사람이 싫다 하여도 반드시 깊이 살필 것이 있으며, 많은 사람이 좋다 하여도 역시 깊이 살필 것이 있다”라고.

선거는 다수결의 방법으로 치러진다. 이 다수결을 두고 그 자체를 민주주의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다수결은 어디까지나 토론 등에 의한 합의가 불가능할 때 택하는 차선(次善)이다. 그나마 다수의 선택을 받는 쪽을 결정하는 ‘방법’인 것이다. 그런데 익히 우리가 민주적이지 않다고 여기는 국가들도 의사결정의 방법으로 다수결을 택하곤 한다. 심지어 그런 나라에서는 만장일치에 가까운 선택이 나오기도 한다. 만일 다수결 그 자체가 민주주의라면, 해당 국가는 지극히 민주적인 나라라고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수의 의견이 결코 진리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증명됐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보다 감성에 휘둘리는, 즉 선동(煽動)으로 움직이기 쉬운 민중들에게 선언적 정보를 통해 정치가의 의도대로 움직이게 하는 ‘빈민(貧民) 정치’를 우려했다.

그뿐이랴. 후세의 창작이라는 말도 있지만, 지동설(地動說)을 주장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종교재판에 넘겨져 문책받고 나오면서도 “그래도 지구는 돈다”(“Eppur si muove”)는 말을 남겼다지 않는가. 지금에야 지동설이 상식이지만, 신학(神學)이 주류고 다수였던 당시 사회에서는 태양은 지구를 도는 것이 마땅한 진리였다.

필자 개인적으로 이번 선거가 아쉬웠던 까닭은 ‘정권 심판’외에 다른 논의를 찾기 어려웠던 탓이다. 특히 20~30대에게 필요한 정책과 이슈는 사실상 사라졌다. 하향식으로 전해진 하나의 이슈가 너무나도 컸기 때문에, 국민을 대리하기 위해서 귀담아야 들어야 했던 각계각층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작을 수밖에 없었다. 일자리, 주거, 복지 등 여느 때의 총선이었다면 적잖이 오고 갔을 대화들이 우리 속에서도 사라지고 말았다.

하여 이 파란색의 물결 속에도 깊이 살필 것이 있다. 모두가 똑같은 파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권 심판을 위해 파란색을 찍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후보는 싫더라도 아니 찍을 수 없어서 파란색을 찍기도 했을 것이다. 어찌 감히 호남에서 빨간색을 찍겠냐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솔직히 말해서 파란색이 이겼을 때 적잖은 이익을 챙기는 사람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많은 사람이 좋거나 싫다고 하여 선택한 이 결과를 더 깊이 살펴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수십 번 응시원서를 쓰고도 떨어진 청년의 한 표, 차마 이 나라에서 아이 둘은 못키우겠다는 부모의 한 표, 수없이 올라가는 아파트가 있어도 내 집 하나 없는 가족의 한 표, 폐지 한 수레를 오체투지(五體投地)로 이고 날라야 한 끼를 간신히 공양받는 노인 등 저마다의 한 표가 파랑이라는 색깔 하나를, 실은 알록달록 물들였기 때문이다.

더불어 세상을 변화시켜 온 것은 늘 소수로 시작했다는 것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우리가 다수결의 방법을 택하는 까닭은 그것이 진리여서가 아니다. 더 많은 힘을 가진 까닭이다. 그래서 그 힘이 다수의 횡포가 되어 소수를 배제한다. 비단 사회적 소수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이번 총선에서 선택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부득이하게 선택할 수 없었던 수많은 이슈와 논의들이 우리에겐 남아있다. 진정한 민주주의적 다수결은 그런 소수의 주장이 표명되고 의견이 반영될 때 이루어진다. 심판을 넘어, 변화를 기대한다.

전승훈 문화통신사협동조합 전략기획실장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기미잡티레이저 대신 집에서 장희빈미안법으로 얼굴 잡티제거?
  • 군산 나포중 총동창회 화합 한마당 체육대회 성황
  • 대한행정사회, 유사직역 통폐합주장에 반박 성명 발표
  • 이수민, 군산새만금국제마라톤 여자부 풀코스 3연패 도전
  • 메디트리, 관절 연골엔 MSM 비타민D 출시
  • 만원의 행복! 전북투어버스 타고 누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