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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 퇴거 논란, 더는 가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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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 퇴거 논란, 더는 가지 말아야
  • 전민일보
  • 승인 2017.06.02 1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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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갈 때 보았네/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최근 며칠 새 필자의 뇌리를 계속 맴도는 ‘그 꽃’이라는 제목의 짧은 시다.

이 시의 저자는 노벨문학상이 발표되는 매해 10월 둘째 주 목요일이면 대한민국 국민의 가슴을 한껏 설레게 하는 우리 지역 군산출신의 고은 시인.

그런데 이런 고은 시인에게 참으로 민망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경기도 안성에서 20여 년 간을 거주하며 고요하게 창작활동에 전념해오던 시인을 인문학도시 구현을 목표로 하던 수원 시가 적극 설득, 4년 전인 2013년 8월, 장안구 광교산 자락으로 이사를 하게 했는데 난데없이 주민들이 고은 시인에게 마을을 떠나라며 곳곳에 펼침 막까지 펼쳐들고 시위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유인 즉은, 시인의 자택과 약 3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광교저수지가 상수도 보호구역으로 설정돼있어 주변지역의 개발이 제한되고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자신들은 지난 47년간 개발제한구역과 상수원보호법 같은 이중 규제 때문에 주택을 새로 짓는 일은 물론, 보수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데 반해 고은 시인은 조례까지 제정해 개인 집을 사들이고 개·보수 등에 9억8000여 만 원을 들인데다 최근 4년간 매해 1000만원이 넘는 전기료를 비롯한 상하수도 요금까지 내주는 등 수원시가 시민의 혈세를 쏟아 붓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중규제로 인한 광교산 자락에 사는 시민들의 그간의 고충이야 미루어 짐작해 봄직하다.

그러나 우리가 유추해보고 마음을 내어줄 수 있는 상한선은 딱 거기까지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수원시민과 수원시가 함께 풀어야할 행정적인 절차와 법리일 따름이지 고요히 집필활동을 하던 시인을 삼고초려해서 모셔다 놓고 할 수 있는 행동이 도저히 아닌 것이다.

고은 시인의 문학적 자양분을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도 부족한 시간일텐데 이 무슨 우매한 일인지 소식을 전해 듣는 국민들과 필자의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이다.

상황이 이렇듯 어처구니없이 돌아가자 수원문인협회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수원문학관건립을 위한 심포지엄’도 무기한 연기한 채 고은 시인을 수원에서 떠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공식입장을 밝혔다.

고은 시인 지키기에 전념하겠다고 거듭 덧붙이면서 말이다.

그러나 섬세하기 만한 노 시인의 상처받은 마음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도 남았으리라.

그래서일까…….

시인의 주위 지인들로부터 시인이 그곳을 떠날 것이라는 이야기가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지극히 나올 법한, 합리적인 이야기임에 분명하다.

덩달아 바빠진 건 지자체.

고은시인이 광교산 자락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지자체 사이에서는 앞 다퉈 고은시인 ‘모시기’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는데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인 지자체는 고향인 전북 군산시다.

군산시는 지난 2015년 2억여 원을 들여 고은 시인의 어머니가 오랫동안 거주한 용둔길 53번지 ‘집필실’을 매입했고 이어 바로 옆 생가 매입도 시도했으나 토지 주와 협상이 결렬돼 현재 무산된 상황이었던 터.

그러나 최근 수원시 일부 주민들에게서 ‘고은 시인 나가라’는 팻말을 든 구호가 등장하고 뉴스에 보도가 되자 군산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졌고 군산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고은 시인 모시기 사업’이 구체화되고 있다.

또한 시인이 수원으로 옮겨 오기 전 머물던 경기도 안성시 역시도 ‘고은 시인 다시 모시기’움직임이 일고 있다.

물론 고은 시인 지키기에 나선 수원시민들도 있다.

수원시 42개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들로 구성된 주민자치위원장 협의회는 긴급회의를 열고 “어렵게 모시고 온 고은시인을 이렇게 허망하게 떠나 보내게 해서는 절대 안된다”는 내용의 호소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으니까.

그러나 인생은 타이밍이다.

시심이 흔들릴 대로 흔들려버린 대한민국 문학의 자산인 고은 시인의 집필활동에는 이미 빨간불이 켜져 버렸다.

문학과는 전혀 별개인 이번 환경문제로 불거진 이 일로 인해 물인 듯, 바람인 듯 써내려가던 고은 시인의 보석 같은 시어를 당분간은 아니 어쩌면 상당히 오랜 기간 접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 불안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 번 더 진화 한다.

매해 10월 둘째 주 목요일, 스웨덴 한림원을 향해 가져보는 혹시나 하는 ‘가슴 떨림’이 더는 우리들 몫이 아닐 수도 있으리라.

이래도 더 갈 것인가?

노벨문학상이라는 9부 능선을 넘어 온 위대한 시인의 어처구니없는 가슴앓이를 보며 과연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 것일까?

이 치열한 고민을 미뤄둔다면 시인의 시처럼 ‘우린 어쩌면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그 꽃을 내려갈 때 보아야 하는’ 슬픈 우를 기필코 범하고 말 것이다.

생각하자. 우리 지역 군산옥구가 낳은 문학계의 큰 별이 이대로지지 않게 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홍현숙 전주시 다울마당 운영위원,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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