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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소방서, 늦깍이에 이룬 소방관의 꿈

기사승인 2019.08.16  15:2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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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7년 2월 어느 새벽. 그날도 어김없이 야간근무 중이었던 저에게 왕궁에 있는 사료공장에 보안감지기 이상신호! 라는 긴급출동 지령이 떨어졌고 저는 신속히 출동 했습니다. 현장에 도착한 저는 이미 화염이 공장의 3/1을 삼키고 있는 끔찍한 현장을 보게 되고 곧바로 119에 신고를 하였습니다. 좁은 논길을 지나야하는 협소한 진입로를 출동차량에 경광등을 최대로 켜고 진입로를 비췄습니다. 방화복과 안전장비를 착용한 소방관들 수십 명이 출동하여 화염과 싸우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저는 뭔지 모를 벅찬 감정이 들었습니다. ‘그래!!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저기야!!’ 다시금 방향을 잃고 살아온 저의 손에 나침판이 쥐어지는 순간 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화재는 순식간에 번져 공장은 전소가 되었지만 무인 경비를 사용하는 공장에 사람은 없어서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 한동안 저의 머릿속은 온통 ‘가족들 과 아내를 어떻게 설득하지? 그리고 시작한다 한들 내가 할 수 있을까? 이미 실패 했었잖아? 단지 나의 욕심일까?’ 하는 물음과 의심으로 가득 찼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선명해져 가는 소방관이라는 직업은 저에게 꿈 그 이상으로 커져가고 있었습니다. 저 방화복.. 한번만 입어봤으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무모한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고민과 고민 끝에 저는 아내를 설득하고 장인장모님께 무릎을 꿇고 부탁드렸고 결국 어렵게 허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죽을힘을 다하자!! 정말 이번만은 절대로 내 자신과 가족들에게 실망을 안기고 싶지 않아!!’

[꿈을 이루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수험생활. 결혼까지 하고 시작한 수험생활은 그리 녹록지만은 않았습니다. 약 9개월의 시간동안 아침부터 밤까지 단 하루도 게을리 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아침마다 집을 나서는 저에게 파이팅을 외쳐주는 아내와 사랑하는 가족들을 떠올리면서 몇 번의 눈물도 흘렸습니다.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굳게 믿으면서.. 그 결과 공채시험에 당당하게 합격하였고 드디어 제가 원하는 소방관이 되었습니다. 그토록 바라던 꿈이 저에게 온 것입니다. 먼발치에서 불구경 하던 제가 이제는 불과 싸우는 소방관이 된 것입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묻습니다. 너는 왜 위험한 직업인 소방관을 선택했냐고.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 있는 삶은 남들보다 돈을 많이 벌어서 많은 것을 누리는 것보다 누군가가 소중하게 생각하고 특별하게 여기는 것들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서 희생도 불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그래서 그 사람들이 나의 존재로 인해서 안심하고 살면서 희망과 꿈을 키워간다면 나는 그 자체로서 행복하고 의미가 있는 삶인 것 같다고. 그래서 소방관이 되고 싶었다고. 이렇게 소방관을 꿈꾸던 어린소년이 35살이 되어서야 그 꿈을 이뤘습니다. 이렇게 저는 또 누군가의 꿈이 되었습니다. 저는 저와 같이 꿈을 꾸는 소년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고 싶습니다.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게 가장먼저 달려가 손 내미는 사람. 대한민국 소방관. 저 또한 언젠가 현실에 부딪혀 지칠 때 지금 이글을 읽으며 항상 초심을 잃지 않고 지치지 않는 든든한 소방관이 되겠습니다.

 

                                                               익산소방서 함열119안전센터 소방사 김산수

 

정영안 기자 jya6505@hanmail.net

<저작권자 © 전민일보 모바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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